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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동화, 이야기

#43 [그림형제 동화] 백사 (흰 뱀)

by RedBaDa 2023.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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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아주 옛날에 왕이 한 분 살고 계셨어요.
그 왕은 온 나라에 지혜로 이름을 떨치시는 분이셨어요.
무엇도 그에게서 비겨갈 수 없었는데요, 가장 은밀한 소문조차도 공기가 전해주는 듯 그는 다 알았어요.
하지만 그에겐 이상한 습관이 하나 있었는데요. 매일 저녁식사를 마치고 식탁 위가 깨끗이 치워지고 아무도 없고 나면, 믿음직한 시종(하인) 한 명이 그에게 한 뚜껑이 덮인 접시를 한 접시 더 가지고 와야 하는 거였어요.
하지만 그 접시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시종 자신도 몰랐어요. 누구도 알 수 없죠. 왜냐면 왕이 혼자 남을 때까진 절대 그 뚜껑을 열어보지 않았으니까요.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 접시를 치우던 그 시종(왕의 심복)이 호기심에 못이겨 그 접시를 살짝쿵 자기 방으로 가지고 갔어요.
시종은 문을 주의 깊게 닫은 다음 접시의 뚜껑을 들어 올려보았어요.
그러자 접시 위에 ‘백사’(몸이 흰 뱀. 백사는 신령한 짐승으로 여겨짐) 한 마리가 놓여있는 게 보였어요.
이쯤 되면 도저히 맛을 안 보곤 참을 수 없죠. 
그래서 시종이 조금만 떼어다가 입에 넣어봤어요.
혀에 닫자마자 창문 밖에서 낯설고 자그마한 목소리들이 소곤소곤 거리는 게 들리는 거예요.
그는 가 엿듣다 그게 참새들이 서로 재잘거리는 소리란 것을 알게 되었어요.
참새들이 들판과 숲에서 본 다양한 종류의 소식들을 서로 주고받으며 대화하는 내용이었어요.
뱀을 먹은 게 그에게 동물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준 거지 뭐예요.
그런데 우연히도 바로 그날 왕비가 자신이 가장 아끼는 반지를 잃어버렸는데 그걸 훔쳐간 사람으로 왕의 이 충실한 시종(하인)이 의심받은 거예요. 왜냐면 시종은 왕의 심복인지라 어디든 들릴 수 있으니까요.
왕이 이 자를 잡아들이라 명했어요.
왕은 추상같은 불호령을 내리시며 내일 아침까지 이실직고 하지 않음 사형에 처하겠노라고 말했어요.
시종이 자신의 죄 없음을 말씀드렸지만 말을 아예 안 함만 못했어요(소용이 없었어요).
그가 이 문제로 두려움에 떨며 안뜰로 내려가 어찌하면 이 문제를 헤쳐 나올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있는데.
오리 몇 마리가 개울가에 차분하게 앉아선 수다를 떨고 있는 거예요.
오리들은 주둥이로 자기 깃털을 부드럽게 하며 비밀스런 수다를 주고받고 있었어요. 
시종이 서서 엿듣게 되었어요.
오리들은 서로 자신들이 오늘 아침 비틀비틀 여기저기로 거닐었던 장소들 얘기로 시작해, 그 날 먹은 최고의 음식 애기까지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어요.
그때 오리 한 마리가 처량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내 위에 묵직한 뭐가 들어차 있어. 아침에 허겁지겁 먹다 왕비님 창문 아래에 놓여 있던 반지까지 삼켰나봐. 나 이제 어떡해.”
시종(하인)은 즉시 그 놈의 목을 움켜잡곤 부엌으로 데려가 요리사에게 말했어요.
“이 놈 튼실하지 않소. 자, 죽이시오.”
“좋소.”라며 그 요리사가 손으로 그 오리의 몸무게를 재어보더니 말했어요. 
“거 참 살 한 번 잘 찐 놈이네. 때마침 불에 구워 요리할 놈을 찾던 참인데.”
그리하여 요리사가 그 오리의 목을 삭둑 잘라 내장을 끄집어내자, 왕비님의 반지가 위 안에서 발견이 되었어요.
이리하여 그 시종은 자신의 결백함을 쉽게 증명해보일 수 있었어요.
그래서 왕이 자신의 잘못에 대한 보상을 해주기 위해 시종에게 호의 하나를 해 주겠다 말씀하시며 궁전 내 최고의 직책을 약속하셨어요. 바라는 직책이 있음 말만 하라고요.
시종은 모든 걸 거절했어요. 다만 여행할 말 한 마리와 용돈(여행경비)을 조금 주시면 잠시 세상구경을 하고 올 용의는 있다고 말씀드렸지요. 
말씀드린 게 모두 받아 들이지자, 시종은 여행길을 떠났어요.
하루는 늪에 갔더니, 갈대밭에 갇힌 물고기 세 마리가 목이 말라 입을 뻐금뻐금하고 있는 게 보였다. 
그 물고기들이 벙어리였다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는 물고기들이 이제 비참하게 죽는 걸 한탄하는 소리를 듣고 자비심이 일어 말을 길 한 쪽에 대고 세 마리 죄수들을 들어 물에다 도로 놓아주었다. 
물고기들이 기쁨에 파닥 파닥이며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며 그에게 소리쳤어요.
“우리를 구해주신 이 은혜는 꼭 기억했다 보답해드릴게요!” 
그가 다시 말에 올라 한 동안 가는데 자신의 발밑 아래에 있는 모래 속에서 누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가 가만 들어보니 그건 ’개미 왕‘의 불평소리였다. 
“왜 사람들이 서투른 짐승을 타고 와서 우릴 밟지 못해 안달인 거야? 저 무식한 말 놈의 자식이 지(자신의) 무거운 발굽으로 내 불쌍한 백성들을 무자비하게도 밟고 가는데!” 
그래서 그가 말을 길옆에 딱 붙어서 조심히 가게 하자, ’개미 왕‘이 그에게 큰 소리로 말했어요.
“자넬 기억해 두겠네… 내 언젠가 이 은혜를 꼭 함세!”
그 길은 때마침 숲으로 이어졌어요.
숲에 도착해 보니 나이 들고 큰까마귀 두 마리가 자신들의 둥지 옆에 서서 자신들의 어린 자녀들을 내던지고 있었어요.
“이 게으름뱅이들, 이제 너희들이 알아서 살거라,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들 같으니라고!”라며 그들(부모 까마귀)이 외쳤어요. “우린 더 이상 너희들을 위해 음식을 찾을 수 없다. 너희도 이제 많이 컸으니 너희 밥은 너희가 알아서 하거라.”
하지만 불쌍한 어린 큰까마귀들은 땅바닥에 바로 누워 자신들의 날개만 파닥이며 이렇게 외칠 뿐이었어요.
“오, 우리 어찌지 우린 그냥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어린애들인데! 우리보고 먹이를 구하라니요 우린 날지도 못하는 걸! 우리 어째, 여기 있다 굶어죽어?”
그래서 착한 젊은이는 말에서 내려 검을 빼들고서 자신의 말을 죽인 다음 그걸 어린 큰까마귀들에게 먹이로 주었다. 
그러자 그들이 깡충깡충 뛰며 달려와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들이 소리쳤다. 
“우린 꼭 당신을 기억해둘게요… 착한 사람에게 복이 깃들게요!”
이리하여 그는 이제 자신의 두 발로 걸어야 했어요.
한참을 그렇게 걸어가니 커다란 도시가 나왔어요.
큰 소음과 함께 거리들마다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었어요.
그때 말 등에 탄 한 남자가 오더이 큰 소리로 외쳤어요.
“공주님이 남편을 찾고 있다. 신청하는 자는 누구든 어려운 임무 하나를 완수해야한다. 만약 성공하지 못하면 목을 베 죽일 것이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이 시도를 해보았지만 모두 헛수고였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젊은이는 공주님을 보자마자 엄청난 아름다움에 이 모든 위험을 망각하고 왕 앞으로 나아가 자신이 청혼하러 왔다 말하고 말았어요. 
왕은 그를 바다로 앞장서 데리고 가, 황금 반지 하나를 바다 속에 던졌어요. 젊은이가 보는 앞에서 말이죠.
그러더니 왕이 난데없이 방금 자신이 던진 그 반지를 바다 밑바닥에서 다시 가져오라는 거예요. 
그리고 덧붙이길,
“만약 네가 반지를 찾지 못하고 올라오면 네 몸이 파도에 부서질 때까지 내던져지고 또 내던져질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 잘생긴 젊은이가 처한 상황을 몹시 애석해하며 가 버렸고 그리하여 젊은이만 홀로 바닷가에 남게 되었어요.
그가 해안가에 서서 어찌해야할지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물고기 세 마리가 자기 쪽으로 헤엄쳐오고 있는 게 보이는 거예요.
그들은 젊은이가 예전에 구해준 바로 그 물고기들이었어요.
가운데 있는 물고기가 입에 홍합을 하나 물고 있었어요. 그 물고기가 그 홍합을 해안가에 있는 젊은이의 발 부분에 놓았어요.
그래서 젊은이가 홍합을 집어 들어 열어보니 홍합 껍데기 속에 황금 반지가 들어있는 거예요.
뛸 듯이 기쁜 그가 그걸 왕께 가져가 받쳤어요. 이제 약속하신 공주와의 결혼은 당연지사겠지 하고 엄청 속으로 기대하면서요. 
아 근데 문제가 하나 발생했어요.
공주님은 무척 도도한 분이라 이 젊은이의 출생신분이 자신과 동급이 아닌 걸 알고는 경멸하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첫 번째 임무가 끝나자 도리어 두 번째 임무를 완수할 것을 요구했어요.
그녀는 정원으로 가 ‘기장 종자’(기장=잡곡밥. 종자=씨앗. 기장 사진링크 ▶ https://goo.gl/bFDQa1 )로 가득 찬 ‘마대’(커다란 자루) 10개를 손수 다 잔디밭 위에 흩뿌렸어요.
그런 다음 공주가 말했어요.
“자 내일 아침 해 뜰 때까지 이 종자(씨앗)들을 모두 주어 담거라, 한 톨이라도 모자라면 목숨이 두개라도 살아남을 수 없을 줄 알아라.”
젊은이가 정원에 앉아 이 말도 안 되는 임무가 도저히 가능한지 조차 짐작을 못하고 있었어요. 어찌해야 할지 머릿속이 까마득하지 뭐예요.
새벽의 여명(밝음)이 밝아오길 기다리며 자신의 죽음을 하염없이 슬퍼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첫 번째 햇살이 정원 안을 비추자 곧 젊은이 자기 옆에 나란히 쌓인 10포대기의 포대가 보았지 뭐예요. 모두 꽉꽉 다 채워진 포대였어요. 한 톨도 남긴 없이요.
‘개미 왕’이 밤에 수천의 개미와 또 수천의 개미를 데리고 와 ‘기장 종자’(잡곡 씨앗)를 죄다 주어 포대 속에 담은 거지요. 이건 근면성실한 개미들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어요.  
곧 공주님이 몸소 정원으로 내려왔다가 이 젊은이가 자신이 준 임무를 완수한 걸 보고 화들짝 놀랐어요.
하지만 이 정도로 그녀의 도도함이 무너질 리가 없었죠.
그래서 공주는 정신을 가다듬고 이렇게 말했어요.
“네가 비록 두 임무를 완수했을지라도, ‘생명의 나무’에서 사과를 따 올 때까진 내 남편으로 받아줄 수 없다.”
‘생명의 나무’라니요? 젊은이는 ‘생명의 나무’가 어디 있는 나무인지도 모르는 걸요. 
그래도 그는 출발했어요. 가고 또 갔죠. 자신의 다리가 옮기는 대로 갔다는 표현이 더 낫겠네요. 정말이지 이번 임무는 어쩔 수 없는 건가요.
그렇게 젊은이가 세 개의 왕국을 방랑한 다음, 저녁 무렵 어느 숲에 도착해 나무 아래 누워 자려고 하는데.
나뭇가지들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한 번 나는 것 같더니 “뚝!”하고 황금사과 하나가 자신의 손으로 쏙 떨어지는 거예요.
동시에 큰까마귀 세 마리가 날개를 푸드덕 휘저으며 그의 무릎 위에 내려앉았어요.
그들이 말했지요.
“저희들이 굶어 죽는 걸 살려 주신 분이 당신이세요. 우린 그때 그 어린 큰까마귀들이고요. 이제 우리들도 어른이 되었답니다. 당신이 황금 사과를 찾는단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생명의 나무’가 있는 바다 건너 땅 끝자락까지 날아가 당신을 위해 사과를 따온 거예요.”
뛸 듯이 기쁜 그 젊은이는 집으로 즉시 출발해 그 황금 사과를 아름다운 공주님께 받쳤어요.
이로서 도도한 공주로서도 더는 핑계될 거리가 없게 되고 말았어요.
그들은 그 ‘생명의 사과’를 두 조각으로 나눠 함께 먹었어요.
그러자 공주님의 마음속에 그에 대한 사랑이 가득 채워졌어요.
그래서 그들은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누리며 오래오래 알콩달콩 살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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